[주일설교, 2021.02.07, 김진영 담임목사]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1. 기본 정보
| 항목 | 내용 |
|---|---|
| 일자 | 2021년 2월 7일 (주일) |
| 설교자 | 김진영 담임목사 (서울중앙교회) |
| 설교 제목 |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
| 성경 본문 | 사무엘상 15장 17-24절 |
| 함께 읽은 말씀 | 설교 중 언급: 창세기 2-3장(선악과) / 고린도전서 10:13 / 시편 23:4 / 에베소서 5:22-25(결혼 서약) |
| 영상 | https://youtu.be/vKdpjJ5lVEk (설교 약 28분 + 기도) |
작성 근거: 유튜브 영상의 한국어 자동 자막 전체를 읽고 정리했습니다. 자동 자막은 고유명사와 성경 용어를 자주 틀리게 받아 적으므로(예: "4 호랑·4호 랑"→사울 왕, "암에 알레 그·암 알력"→아말렉, "아 각"→아각, "갈 매력"→갈멜, "고로 나"→코로나) 성경 본문과 문맥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영상은 설교가 시작되는 곳부터 녹화되어 있어 성경 봉독 장면은 들어 있지 않습니다. 설교 첫머리에서 사울의 "두 번의 불순종"을 이미 아는 내용으로 전제하시는 것으로 보아, 사무엘상의 사울 왕 이야기를 이어서 다루는 연속 설교의 한 편으로 보입니다.
2. 한눈에 보는 설교의 흐름
| 순서 | 내용 |
|---|---|
| ① 명령의 성격 | 하나님이 사울에게 주신 세 가지 명령은 어렵지 않고,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은혜와 복을 주시려는 것이다. |
| ② 선악과 | 아담과 하와가 받은 명령도 쉬웠다. 사울의 죄와 아담·하와의 죄에는 공통점이 있다. |
| ③ 불순종의 뿌리 | 불순종은 환경이나 외부가 아니라 내 안에서 나온다. 외부는 유혹할 뿐이다. |
| ④ 사울의 중심 |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 백성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왕이 되고 싶었다(아각, 기념비, 좋은 짐승). |
| ⑤ 불순종의 결과 |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다. 불순종은 하나님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
| ⑥ 살았으나 죽은 자 |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 사무엘상 15장 이후의 사울 — 뿌리 잘린 꽃꽂이의 꽃과 같다. |
| ⑦ 한 사람의 영향 | 한 사람의 순종과 불순종은 파급이 크다. 아담과 예수님, 그리고 목회자·직분자·가장. |
| ⑧ 영적 진리와 실생활 | 중력의 법칙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면 삶의 모든 영역에 반드시 영향이 온다. |
| ⑨ 부부의 예화 | 30년 동안 마룻바닥에서 잔 남편 / 결혼 서약은 하나님께 한 것 / 베개와 이불을 들고 나온 아내 / 10년 동안 팔짱을 끼지 않은 사모님. |
| ⑩ 싸움의 자리 | 우리는 코로나나 바깥의 원수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죄와 싸운다. |
| ⑪ 온라인 예배 | 1월 주일 온라인 예배 현황. 설교를 듣는 것이 곧 예배드리는 것은 아니다. |
| ⑫ 권면 | 오늘 예배가 마지막 예배라고 생각하고 드리라. 자녀는 배려하되 부모의 자세는 흐트러지지 말라. |
| ⑬ 결론 | 내 안의 죄와 싸우고, 예배드리는 이 마음으로 한 주간 삶의 모든 곳에서 살아가라. |
3. 결론 — 예배드리는 이 마음으로 한 주간을 살아가라
- 내 안에 있는 죄와 싸우라. 오늘 하루 하나님께 드릴 예배를 드리기 위해 집중하라.
- 이번 한 주간 살아갈 때에 지금 예배드리는 이 마음으로 살라. 삶의 모든 곳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 속에서, 직장에서, 내가 맡은 일터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내 마음의 중심에 계시게 하라.
-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본 사람들이 "저 사람을 보니 하나님은 참, 교회는 참, 교인은 참 우리와 구별되는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 그렇게 삶으로 예배드릴 수 있도록 한 주 한 주 살아가는 은혜를 구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4. 함께 드린 기도 제목
설교를 마치며 "말씀을 기억하면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시고 두 가지 기도 제목을 주셨다.
- 듣고 순종하기 — "하나님,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은혜를 주십시오."
- 내 안의 죄와 싸워 이기기 — "하나님, 내 안에 있는 죄와 싸울 때에 내 힘으로 싸워 이길 수 없사오니 성령님을 통해 내 안에 있는 죄와 싸워 이기게 해 주십시오. 특별히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있는 분노와 미움과 자존심 상한 것들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은혜를 주십시오."
함께 기도하는 동안 목사님이 이어서 기도하신 내용(자막이 많이 끊겨 통하는 범위만 옮김):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우리를 괴롭게 하심이 아니라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우리의 작은 순종에 큰 복을 주시기 위해 말씀하신 줄을 믿는다는 고백. 나의 가장 큰 문제가 외부나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으며, 원수가 문제가 아니라 원수를 미워하는 내 안의 죄가 문제라는 고백. 이번 한 주 동안 삶의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게 해 달라는 간구.
마무리 기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이 결국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말씀을 믿으며, 질병이든 실패든(자막 불분명) 주위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자막 불분명)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루는 것을 진심으로 믿는다는 고백. 그러므로 더욱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며 살기를 소원하며, 우리를 두신 삶의 모든 자리에서 "나를 왜 이 자리에 두셨는지, 왜 이런 환경에 두셨는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하루하루가 되도록 사용해 주시기를 구하는 기도.
5. 성경 본문 (사무엘상 15:17-24) 줄거리
본문은 개역개정 성경의 내용을 풀어서 요약한 것입니다. 정확한 문장은 성경을 직접 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22절의 한 구절은 설교 제목이 된 말씀이라 그대로 옮겼습니다.
| 구절 | 내용 |
|---|---|
| 15:17 |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한다.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않았느냐,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셨다. |
| 15:18 |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고 하셨다. |
| 15:19 | 그런데 어찌하여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느냐고 묻는다. |
| 15:20 | 사울이 대답한다.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다. |
| 15:21 | 다만 백성이 마땅히 멸할 것 가운데 가장 좋은 양과 소를,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끌어 왔다고 말한다. |
| 15:22 | 사무엘이 말한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만큼 좋아하시겠느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
| 15:23 |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 |
| 15:24 | 사울이 말한다. 내가 범죄하였다.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기 때문이다. |
6. 설교 내용 정리
6-1. 도입 — 하나님의 명령에 있는 두 가지 특징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세 가지 명령을 하셨다. 그 세 가지 명령을 자세히 보면 두 가지 특징이 있다.
- 그 명령이 어렵지 않다.
- 하나님께서 하신 명령은 괴롭히려고 주신 것이 아니라, 어렵지 않은 명령을 지키면 은혜와 복을 주시기 위해 주신 말씀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고 특별히 말씀을 생각할 때 이 두 가지를 꼭 기억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명령은 어렵지 않다. 하나님의 본성상 우리가 못 할 것을 명령하시는 분이 아니다.
- 만약 우리가 못 할 것 같으면 능히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허락하지 않으신다. 감당하지 못할 시험이 왔을 때에는 피할 길을 내시거나 이길 수 있게 해 주시기를 반드시 약속하시고 주신다.
사울에게 주신 세 가지 명령
| 명령 | 목사님의 설명 |
|---|---|
| 첫째 | 기름 부음을 받았을 때에 "수비대를 공격하라." |
| 둘째 | 전쟁이 있을 때에 "기다리라." |
| 셋째 | "아말렉을 치라." |
이것은 사울이 능히 할 수 있는, 또 하나님의 은혜로 할 수 있는 명령이었다.
특별히 세 번째 "아말렉을 치라"는 명령은 이런 자리에서 주어졌다. 앞선 두 번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사울 왕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하나님께서 이 명령을 주실 때에는, 지킬 수 있는 이 간단한 명령을 통해 사울과의 서먹한 관계,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시려는 의도로 주신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명령을 들을 때에 "지킬 수 있는 것을 주시는구나. 내 힘으로 안 될 때에는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능히 하게 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항상 기억하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6-2. 선악과 명령 — 참 쉬운 명령이었다
선악과 명령을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사울 왕이 범한 죄와 아담과 하와가 범한 죄에는 공통점이 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이것은 아주 쉬운 명령이다.
- 무엇을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너희는 이것을 반드시 해라" 하신 것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가만히 있으라는 말씀이다. 따 먹지만 않으면 된다.
- 다른 열매가 많이 있으니 안 따 먹으면 된다.
- 이 명령이 쉬운 또 한 가지 이유는 아담과 하와의 본성에 맞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의를 사랑하는 것이 천성이고 본성이 되어 있는 아담과 하와다. 우리하고 다르다.
-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너무나 쉽고 기쁜 일이었다. 순종할 수 있는 능력도 다 가지고 있었다.
사울에게 하신 명령이나 아담과 하와에게 하신 명령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능히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런데 불순종이 들어왔다.
6-3. 불순종은 내 안에서 나온다
- 불순종은 환경이나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나온다.
- 아담과 하와는 왜 불순종했는가? 사탄의 거짓말에 속았고, 사탄이 불순종하는 동기를 자극했다. 그러나 "나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독립하겠다"는 영적인 교만이 아담과 하와가 범한 죄의 본질이다.
- 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나의 태도와 관련되어 있다. 내 마음속에 하나님께 불순종하고자 하는 동기가 내 안에 있다.
- 외부에서는 유혹할 뿐이다. 죄의 핵심, 죄의 뿌리는 내 안에 있다.
6-4. 사울의 불순종 — 백성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왕
사울 왕의 불순종의 핵심은 이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 백성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고, 존경받는 왕이 되고 싶다는 것이 사울 왕의 중심에 있었다.
목사님은 사무엘상 15장을 자세히 읽어 보라고 하셨다. 사울이 던진 말 한마디 한마디 속에 "백성들에게 존경받고 사랑받는 왕이 되고 싶다", "왕으로서의 명예와 권력과 권위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보다 더 강하게 사울의 마음을 잡고 있다.
| 사울이 한 일 | 목사님의 설명 |
|---|---|
| 아각을 살려 왔다 | 전쟁터에서 죽이면 되는데 왜 살려 왔는가?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을 가장 잘 드러내는 방법은 적군의 왕을 사로잡아 와서 처형하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죽이면 몇 사람 보지 못한다. 그러나 사로잡아 와서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죽일 때에 왕으로서의 체면과 권위는 분명히 높아질 것이다. |
| 갈멜에 기념비를 세웠다 | 진멸하라고 하신 전쟁이다. 기념비를 세우면 안 되는 전쟁이다. 그런데 굳이 갈멜에 가서 기념비를 세운다. 자기의 업적을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사울이 정말 우리의 왕이다"라고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
| 좋은 짐승을 남겼다 | 왜 남겼는가? 백성들이 요청했기 때문이다. 백성들의 요청을 들어줄 때에 "우리 왕은 정말로 우리 마음을 잘 알아주는 좋은 왕이다"라는 말을 듣고 싶은 욕심이 그에게 있었을 것이다. |
6-5. 불순종의 결과 —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다
불순종의 결과로 사울이 벌인 일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린 것이다. 목사님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불순종은 하나님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시다. 사울을 왕으로 삼으신 것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삼으신 것이다.
- 사울이 스스로를 작게 여길 때에, "나는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여길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셔서 왕으로 삼으셨다.
- 그런데 왕이 되고 난 다음에 스스로 높아졌다. 왕으로서의 명예와 존경을 스스로 취하려고 결심하여, 자기를 대리인으로 세우신 하나님을 배신한 것이다.
- 그리고 왕으로서의 존경을 얻기 위해 백성들의 눈치를 보고 백성들의 칭찬을 받으려고 행했다.
- "나는 이제 스스로 왕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대리인이 되기 싫습니다"라고 했을 때 관계가 깨어진 것이다.
아담과 하와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삼으셨다. 선악과 금령을 깨뜨리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살기 싫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겠습니다"라고 할 때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삶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끼친다
오랫동안 신앙생활 한 분들은 본능적으로 느낄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깨어져 있을 때 그것은 내 삶의 모든 부분에 반드시 영향을 끼친다. 신앙생활만 안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 말씀을 듣고 말씀을 통해 은혜받는 것, 기도를 통해 기도 응답을 체험하는 것,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고 봉사하며 살아가는 기쁨 — 하나님과의 관계가 살아 있을 때에는 내 삶의 모든 것이 살아 있다.
-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서먹서먹하고, 죄를 품고, 관계가 깨어져 있으면 다 깨어지게 된다.
6-6. 살아 있으나 죽은 사람 — 아담과 사울
아담 — 뿌리 잘린 꽃
-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다. 아담은 몇 살까지 살았는가? 성경의 기록에 930세까지 살았다.
-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서 에덴에서 쫓겨났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다.
- 그 이후에 아담은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 우리에게 다 적용되는 신비인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이후에 아담은 살아 있으나 죽은 사람이다.
- 꽃꽂이에 꽂혀 있는, 뿌리가 잘린 꽃과 같다. 살아 있고 화려하게 보이나 실상은 뿌리에서 끊어졌기 때문에 죽어 있다.
사울 — 사무엘상 15장은 결정적인 순간이다
- 사무엘상 15장은 사울 왕의 삶에서 결정적인 순간이다. 이 사건으로 사무엘과 사울은 죽을 때까지 서로 보지 않는다.
- 사무엘을 안 보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다. 중요한 것은 사무엘을 보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사무엘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사울이 단절한 것이다.
- 그 뒤에 사울은 누구와 가까이하는가? 힘센 용사들을 자기 주변에 계속 불러 모은다.
- 마지막 순간에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신접한 여인을 찾아간다. 마귀에게 끌려다니는 비참한 상태에서 그의 왕관이 떨어진다.
- 사울은 40년간 통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왕이 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사무엘상 15장의 이 사건이 있었고, 그 이후에 사울 왕은 더 이상 하나님의 왕이 아니다. 왕으로 살지만 왕이 아니다. 살아 있는 것 같으나 이미 죽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 살아 있는가
-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를 두신 자리에서 순종하며 살아갈 때, 그때 나는 살아 있다.
- 내가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든지, 아무리 귀한 자리에 있든지, 어떤 상황에 있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나를 곤란하게 하시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였구나. 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이 과정을 지나게 하셨을까. 아,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이렇게 경험하라고 하시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듣고 있을 때에 우리는 살아 있다.
-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통해 역사하신다.
6-7. 한 사람의 순종, 한 사람의 불순종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미치는 파급 효과는 굉장히 크다. 특별히 영적인 지도자들,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순종과 불순종은 하나님의 나라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 목사님 자신이 범죄하는 것과 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차원이 다르다고 하셨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모든 인류를 죄와 사망으로 다 끌어당긴 것이다.
- 예수님의 순종은 예수님 한 분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신자에게, 아담과 하와를 통해 온 비참함과 타락을 완전히 회복시키는 순종이다. 그리고 타락이 가져온 것보다 헤아릴 수 없이 큰 은혜를 주는 순종이 예수님의 순종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든,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신자 한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살아 있을 때에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
그러나 그 사람의 관계가 깨어져 있을 때는 다르다. 목회자와 직분자들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져 있다. 집에서 가장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져 있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 부모가 관계가 깨어져 있다. 그것은 그 가정과 교회에 큰 타격을 준다.
6-8. 영적인 진리는 실제 생활에 반드시 영향을 미친다 — 중력의 법칙
말씀을 통해 우리가 익히 아는 진리인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영적인 진리는 우리의 실제 생활에 반드시 영향을 미친다. 목사님은 회중에게 물으셨다.
- "제가 1층 높이에서 떨어지면 다리가 부러지겠습니까, 괜찮겠습니까?" — 괜찮을 것이다.
- "제가 10층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제 다리가 성하겠습니까, 부러지겠습니까?" — 반드시 부러질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중력의 법칙이다.
- "제가 30층에서 떨어졌습니다." — 다리가 부러지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죽을 것이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져 있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 삶의 모든 영역에 반드시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다.
6-9. 예화 ① — 30년 동안 마룻바닥에서 잔 남편
목사님은 이날 책 두 권을 소개했다고 하시며, 그 가운데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라는 책에 있는 일화 하나를 들려주셨다.
- 결혼하여 살아가는 부부가 있었는데, 수십 년간 아내와 떨어져서 마룻바닥에서 자고 있는 한 남편의 이야기다.
- 관계의 틈은 30년 전, 다섯 살짜리 딸이 아팠을 때 생겼다. 남편이 아픈 딸에게 충분한 관심을 보였는지 보이지 않았는지를 두고 아내와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 말다툼을 하고 나서 남편은 속이 상했다. 그래서 아내와 같이 자지 않고 마룻바닥에 나와 잠을 자게 되었다.
- 밤마다 남편은 마룻바닥에서 자고 있는 자기에게 아내가 다가와 주기를 기다렸다. 아내는 밤마다 방에서 혼자 자고 있는 자기에게 남편이 들어와 위로해 주기를 기다렸다.
- 그러나 30년 동안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이 부부는 작은 말다툼 하나 때문에 30년 동안 밤마다 "아내가 다가와 주기를", "남편이 찾아와 주기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
- 부부가 서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살아갈 때에 다섯 살 된 딸은 서른다섯 살이 될 때까지 그 모습을 보고 자랐다. "그 딸은 행복했겠습니까?"
6-10. 결혼 서약은 하나님께 한 서약이다
우리는 결혼 서약을 한다. 결혼 서약을 누구에게 하는가? 하나님께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맹세하지 남편에게, 아내에게 하지 않는다.
- 남편은 손을 들고 이렇게 서약한다. "하나님, 제 옆에 있는 이 자매를 아내로 맞이해서,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예수님께서 교회인 나에게 주시는 그 사랑으로 내가 아내를 사랑하겠습니다."
- 아내도 하나님 앞에 서약한다. "예수님의 은혜를 받은 교회가 예수님께 순종하고 복종하듯이, 나에게 주신 예수님의 그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면서, 그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로 남편에게 순종하고 복종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남편과의 관계(또는 아내와의 관계)가 깨어졌다면, 배우자와의 관계가 본질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 한 서약을 내가 깨뜨린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내가 서약을 깨뜨렸기 때문에, 그것이 깨어졌기 때문에 용서하지 않는 것이다.
베개와 이불을 들고 나온 아내
이어서 짧은 이야기 하나를 덧붙이셨다(누구의 이야기인지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 신혼 초에 부부 싸움을 했다. 남편이 똑같이 소파에서 자려고 방 밖으로 나왔다.
- 그때 아내가 베개와 이불을 들고 남편 곁으로 왔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당신이 좋아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각방을 쓰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당신 곁에 나와서 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부부를 회복시키신다. 회복시켜서 회복과 은혜의 통로로 사용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져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때에, 나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길 때에 내 삶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6-11. 예화 ② — 10년 동안 팔짱을 끼지 않은 사모님
목사님이 한 교회에서 부목사로 있을 때 그 교회 사모님이 들려주신 일화를 기억하고 있다고 하셨다(교회 이름은 자막에 '임 잉크'로 들려 확인되지 않음).
- 사모님도 남편 목사님에게 상처받은 일이 있었다. 젊은 시절 목사님과 함께 심방을 갈 때 여러 권사님과 집사님들이 동행했다.
- 사모님이 남편의 팔짱을 끼려고 했는데 남편이 거절했다.
- 사모님은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모든 집사님들이 보는 앞에서 나를 무시했다. 나도 자존심이 있는데." 그래서 결심했다. "두 번 다시 팔짱을 끼지 않으리라. 내가 죽을 때까지 팔짱 끼나 봐라."
- 10년 동안 팔짱을 끼지 않았다. 남편은 그 사실을 몰랐다.
- 그러나 매주 모임을 인도하고(자막 불분명) 새벽기도를 하고 기도드리는 가운데, 어느 순간 자기가 그런 결심을 한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져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남편 목사님에게 고백하고 용서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목사님은 이런 일이 벌어질 때 당황스럽다고 하시며 물으셨다. "남편은 그걸 알았겠습니까? 당연히 모르죠." 자기 때문에 그렇게 했는 줄도 모르고, 그런 사건이 있었는 줄도 모른다.
그 사모님은 무엇과 싸웠는가
- 내 안에 있는 섭섭함과 싸운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자존심 상했다"는 것과 싸운 것이다. 남편과 싸운 것이 아니다.
- 내 안에 있는 분노, 내 안에 있는 억울함과 싸운 것이다.
- 내 안의 억울함과 상한 자존심이 너무 크다. 그것이 너무 크기 때문에 "남편에게 복종하시오", "아내를 사랑하시오"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들리지 않는 것이다.
6-12. 모든 싸움은 내 안에 있는 죄와의 싸움이다
"여러분,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 우리는 코로나와 싸우지 않는다. 바깥에 있는 원수와 싸우지 않는다. 바깥에 있는 나쁜 사람과 싸우지 않는다.
- 우리는 내 안에 있는 적개심, 미워하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 영적으로 나태하고 게으른 마음, 곧 내 안에 있는 죄와 싸운다.
- 죽을 때까지 우리 주위에는 코로나와 같은 질병이 있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우리 곁에는 나를 괴롭히는 사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우리를 어렵게 만드는 환경이 이 세상에 있는 동안 항상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이 모든 것을 바꾸실 것을 우리는 믿고 있다.
-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모든 싸움은 내 안에 있는 죄와의 싸움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충만하시면
- 내 안에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거하시면, 바깥에 있는 원수를 미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 원수를 긍휼히 여기게 된다.
- 원수를 위해 자기 목숨을 아낌없이 내어 주신 예수님께서 내 안에 살아 계시면 나는 원수를 불쌍히 여기고 섬길 수 있다.
-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기 위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
-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원수를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너무 쉬운 말씀을 주셨다.
-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본성이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 되도록 우리를 바꾸어 놓으셨다.
- "하나님, 그럴 때마다 힘듭니다" 할 때에, 우리의 힘든 것을 아시고 성령 하나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 주셨다.
6-13. 1월 온라인 주일 예배 현황 — 설교를 듣는 것이 예배는 아니다
목사님은 스크린에 표를 띄우셨다. 지난주 당회를 하면서, 새해 1월 한 달 동안 온라인으로 드린 주일 예배의 접속 현황을 정리한 것이다.
| 주 | 예배를 시작할 때 접속 | 설교를 시작할 때 접속 |
|---|---|---|
| 첫째 주 | 218 | 300 |
| 둘째 주 | 195 | 280 |
| 셋째 주 | 190 | 312 |
| 넷째 주 | 222 | 320 |
| 다섯째 주 | 215 | 272 |
-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코로나로 온라인 예배를 드린 지 1년이 넘어가고 있다.
- 예배를 시작할 때 접속한 숫자가 3분의 2 정도다. 3분의 1은 예배를 시작할 때 접속하지 않는다. 설교를 시작할 때 들어와서 설교를 들은 것이다.
"설교 듣는 것이 예배가 아니라는 것은 다 아시죠?"
- 목사님도 설교를 자주 듣는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들을 때도 있고, 잠자기 전에 들을 때도 있다.
- 그러나 설교를 듣는 것이 예배드리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설교를 듣는 것이고, 내가 필요해서 듣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는 것은 아니다.
통계를 보며 드는 솔직한 느낌 두 가지
- 한편으로는 참 대단하다. 꾸준히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들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참 연약한 것이 사실이다. "목사인 나도 1년간 온라인으로 예배드린다고 하면 과연 저 통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가 연약한 것은 사실이다.
예배란 무엇인가 — 시작부터 끝까지
그럼에도, 특별히 온라인으로 예배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는 분들에게 말씀하셨다. 설교를 들으러 들어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이렇게 이어진다.
- 예배를 인도하는 직분자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배로 부르신다고 선언한다.
-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신앙 고백을 함께 한다.
-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은혜로 용서하시는 사죄의 확신을 다시 얻고 기쁨으로 예배를 드린다.
-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 함께 찬송한다.
- 대표 기도하는 장로님의 기도에 우리의 마음을 함께 싣는다.
- 찬양하는 순서(자막 불분명)에 우리의 마음을 함께 싣는다.
-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 그 하나님께 우리를 다 드린다.
- 이렇게 예배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축복을 약속하신다. "세상 어느 곳에 있든지 삼위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이라는 축복을 듣고, 한 주간 삶의 모든 곳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애를 쓴다.
예배 시작부터 마치는 시간까지 마음과 힘을 다해 드리는 예배, 그런 예배자를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아무런 준비 없이 있다가 "설교 한번 들어 볼까" 하며 하나님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면, 그것은 우리 삶에 반드시 타격을 주게 되어 있다. "아니에요, 그래도 설교는 다 들었어요." 그것은 내가 필요하니까 듣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도록 애를 써야 한다.
"여러분, 코로나가 문제입니까?" 아니다.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는 마음, 우리 안에 있는 연약함이 우리를 게으르게 하는 것이다.
6-14. 오늘 예배가 마지막 예배라고 생각하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특별히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려고 애쓰는 분들에게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조금 기분 나쁘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라고 하시면서.
- "내가 오늘 주일 예배를 드리고 죽는다. 오늘 드리는 주일 예배가 내가 드리는 마지막 예배다." 그렇게 생각하고 예배를 드리도록 애를 쓰라.
- 목사님도 자신을 긴장시키기 위해 "이번 한 주간 예배를 드리고 내가 죽을지 모른다. 그러면 이번 주에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하며 긴장하려고 애를 쓴다.
- 온라인으로 예배드릴 때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계속 이렇게 가겠지" 하고 생각하지 말고, "오늘 예배가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마지막 예배일 수도 있다. 하나님께 가장 기쁨이 되는 예배를 드려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내 안에 있는 나태함, 게으름과 싸워서 이기기를 바란다.
6-15. 아이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가정에게
"목사님, 온라인으로 드릴 때 아이들 때문에 정말 어렵습니다.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라서 정말 어렵습니다." 목사님은 "예, 어렵습니다" 하고 인정하셨다.
- 아이들은 1시간 예배에 집중할 수 없다.
- 많은 교회를 보았는데 개혁교회들, 장로교회들이 이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아이들을 아예 로마 병정처럼 만들어서 1시간 앉아 있게 하든지, 아니면 어린이를 위한 순서를 만들어(자막 불분명) 예배 중에 잠깐 데리고 나가게 하든지 온갖 방법을 다 쓰고 있다.
- 우리 교회, 우리 고신 총회는 주일학교 나이까지는 주일학교 예배를 드리게 하고, 중학생 이상은 (어른과 함께) 예배를 드리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이렇게 권면하셨다.
- 가정에서 예배드릴 때 자녀들이 집중하지 않으면 너무 잡지 말라. 우리도 어렸을 때 집중하지 못했다. 아이들을 배려해 주고 많이 격려해 주라.
- 그러나 부모인 여러분, 중학생 이상으로 예배드리는 여러분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말라. 자녀들이 그것을 본다. "부모님이 나를 돌보면서도 집중해서 예배드리려고 했다"는 그 모습을 자녀들이 보고 나중에 다 깨닫게 된다.
7. 참고자료
설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설교에서 직접 말씀하신 내용이 아닌 부분은 성경 본문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성경 연구 자료에 근거했습니다. 연대는 학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 "약"으로 표기했습니다.
7-1. 역사 배경
사울에게 주신 세 가지 명령과 성경 본문
| 설교의 표현 | 관련 본문 | 내용 |
|---|---|---|
| 기름 부음을 받았을 때 "수비대를 공격하라" | 삼상 10:5-7 |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뒤, 블레셋 사람의 영문(수비대)이 있는 하나님의 산에 이를 것과 징조가 임하면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신다"고 말한다. 이 말을 '블레셋 수비대를 치라'는 뜻으로 읽는 해석이 있으며 설교는 그 해석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본문에 "공격하라"는 말이 직접 나오지는 않으므로 달리 읽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수비대를 친 사람은 아들 요나단이다(삼상 13:3). |
| 전쟁이 있을 때 "기다리라" | 삼상 10:8, 13:8-14 | 길갈에서 사무엘이 올 때까지 7일을 기다리라고 했으나, 블레셋과 대치하던 사울은 백성이 흩어지자 기다리지 못하고 직접 번제를 드렸다. 사무엘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
| "아말렉을 치라" | 삼상 15:1-3 | 아말렉을 쳐서 그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는 명령. 오늘 본문의 배경이다. |
아말렉과의 오랜 악연
- 아말렉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지날 때 르비딤에서 처음으로 공격해 온 민족이다(출 17:8-16). 피곤하여 뒤처진 약한 자들을 뒤에서 쳤다고 한다(신 25:17-19).
- 하나님은 그때 "아말렉을 기억에서 지워 버리겠다"고 하셨고, 사무엘상 15장의 명령은 그 말씀의 집행이다(삼상 15:2).
사무엘상 15장의 흐름
| 구절 | 사건 |
|---|---|
| 15:1-3 |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 |
| 15:4-9 | 사울이 아말렉을 쳤으나 아각 왕과 가장 좋은 양·소 등을 남김 |
| 15:10-11 |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한다"고 말씀하심 |
| 15:12 | 사울이 갈멜에 가서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움 |
| 15:13-23 | 사무엘의 책망,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
| 15:24-31 | 사울의 고백. 그러나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나를 높여 달라"고 청함(30절) |
| 15:32-35 | 사무엘이 아각을 처형함.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않음 |
사울의 통치 기간
- 사울이 40년 다스렸다는 것은 사도행전 13:21에 나온다. 사무엘상 13:1의 나이와 통치 연수는 히브리어 본문이 온전하지 않아 번역마다 다르다.
- 사무엘상 15장의 사건이 즉위 몇 년째 일인지는 성경이 밝히지 않는다. 사울의 통치는 대략 주전 약 1050~1010년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7-2. 지리
| 지명 | 설명 |
|---|---|
| 길갈 | 여리고 근처, 요단강 서편. 사울이 왕으로 세워진 곳(삼상 11:15)이자 기다리지 못하고 번제를 드린 곳(13장), 오늘 본문의 책망이 있었던 곳이다. |
| 갈멜 | 사울이 기념비를 세운 곳. 엘리야의 갈멜산(북쪽 해안)이 아니라 유다 남부 헤브론 남쪽의 성읍이다. 아말렉과 싸우고 돌아오는 길목에 있다. 훗날 나발과 아비가일 이야기의 무대다(삼상 25장). |
| 아말렉의 땅 | 가나안 남쪽 네게브와 시내 반도 북부의 광야. 본문은 "하윌라에서 애굽 앞 술까지"라고 한다(삼상 15:7). |
| 기브아 | 사울의 고향이자 왕궁이 있던 곳. 예루살렘 북쪽 약 5km. |
| 엔돌 | 사울이 마지막에 신접한 여인을 찾아간 곳(삼상 28:7). 이스르엘 평야 북쪽. |
| 에덴 |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두신 동산(창 2:8). 범죄한 뒤 그곳에서 쫓겨났다(창 3:23-24). |
7-3. 인물
| 인물 | 설명 |
|---|---|
| 사울 | 이스라엘의 첫 왕.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처음 부름받았을 때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라 했고(삼상 9:21), 왕으로 뽑히던 날에는 짐 보따리 사이에 숨었다(10:22). 본문 17절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가 이 모습이다. |
| 사무엘 | 마지막 사사이자 선지자.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
| 아각 | 아말렉의 왕. 사울이 살려 왔으나 사무엘이 길갈에서 처형했다(삼상 15:33). |
| 아담과 하와 | 하나님이 처음 지으신 사람. 아담은 930세를 살고 죽었다(창 5:5). 설교의 "930세"와 같다. |
| 신접한 여인 | 죽은 자의 영을 불러낸다고 하던 무당. 사울은 블레셋과의 마지막 전투 전날 엔돌의 여인을 찾아갔고(삼상 28장), 다음 날 길보아산에서 죽었다(31장). 역대상 10:13-14는 사울이 죽은 이유로 말씀을 지키지 않은 것과 신접한 자에게 물은 것을 든다. |
| 힘센 용사들 | "사울이 힘센 사람이나 용감한 사람을 보면 그들을 불러 모았더라"(삼상 14:52). |
7-4. 문화
진멸(헤렘)
히브리어 '헤렘'. 전리품을 사람이 갖지 않고 전부 하나님께 바쳐 없애는 것을 뜻한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의 이익을 위한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전쟁이라는 표시다. 그래서 설교에서 "기념비를 세우면 안 되는 전쟁"이라고 하신 것이다. 좋은 짐승을 남긴 것은 심판의 전쟁을 이익의 전쟁으로 바꾼 일이다.
적국의 왕을 사로잡아 오는 관습
고대 근동에서 승리한 왕은 패배한 왕을 끌고 와 백성 앞에 보이는 것으로 승리를 과시하곤 했다. 설교에서 아각을 살려 온 이유를 "체면과 권위"로 설명하신 배경이다.
번제와 숫양의 기름
번제는 제물을 제단에서 모두 태워 드리는 제사이고, 제물의 기름은 가장 좋은 부분으로 여겨 하나님께 태워 드렸다(레 3:16). "숫양의 기름"은 가장 값진 제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무엘의 말은 제사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라, 순종 없는 제사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는 뜻이다(시 51:16-17, 호 6:6).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설교에서 저자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같은 제목의 우리말 번역서로는 미국 작가 필립 얀시의 책(원제 What's So Amazing About Grace?)이 널리 알려져 있으나, 설교에서 가리킨 책이 이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결혼 서약과 "각방"
- 설교의 서약 내용은 에베소서 5:22-25("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에 바탕을 둔다.
- "각방을 쓰지 말라"는 고린도전서 7:5("서로 분방하지 말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주일학교 예배와 개혁교회의 고민
어린 자녀를 어른 예배에 함께 앉힐지, 나이에 맞는 예배를 따로 드리게 할지는 장로교회와 개혁교회가 오래 고민해 온 문제다. 설교에서 말씀하신 대로 교회마다 방식이 다르다.
7-5. 신학 용어
| 용어 | 풀이 |
|---|---|
| 순종 |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따르는 것. 히브리어에서 '듣다'와 '순종하다'는 같은 말(샤마)이다. 본문 22절이 "순종"과 "듣는 것"을 나란히 놓는 이유다. |
| 어렵지 않은 명령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 |
| 감당하지 못할 시험 |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
| 하나님의 형상 |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셨다(창 1:26-27). 타락으로 일그러진 이 형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새롭게 하신다(엡 4:24, 골 3:10). |
| 하나님의 대리인 | 사람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을 다스리고 돌보도록 지음받았다(창 1:28). 이스라엘의 왕도 스스로 주인이 아니라 참 왕이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다스리는 자였다(신 17:14-20). |
| 선악과 금령(禁令)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 아담은 그날 몸이 죽지는 않았으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 설교의 "살아 있으나 죽은 사람"이 이 뜻이다(엡 2:1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 |
| 한 사람의 불순종, 한 사람의 순종 |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아담은 온 인류의 대표였고,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의 대표이시다. |
|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
| 원수를 사랑하라 |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
| 성령 충만 | 성령께서 신자의 생각과 삶을 온전히 다스리시는 상태(엡 5:18). |
| 재림(再臨) | 예수님이 세상 끝날에 다시 오시는 것. 그때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신다(계 21:4-5). |
| 사죄(赦罪)의 확신 | 예배 중 죄를 고백한 뒤, 그리스도 안에서 죄가 용서받았음을 말씀으로 확인하는 순서(요일 1:9). |
| 신령과 진정 | 요한복음 4:24. 개역개정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로 옮긴다. |
| 축복(축도) | 예배 끝에 목사가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을 선언하는 순서(고후 13:13). |
| 당회(堂會) | 장로교회에서 목사와 장로들로 이루어진, 교회를 치리하는 회의. |
| 고신 총회 |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서울중앙교회가 속한 장로교 교단. |
| 심방(尋訪) | 목회자가 교인의 가정을 찾아가 예배하고 돌보는 일. |
8. 정리하며 확인할 점
- 영상 자동 자막의 인식 오류로 일부 표현과 고유명사는 성경 본문과 문맥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설교자의 표현과 미세하게 다를 수 있습니다.
- 2~4장과 6장(설교 흐름·결론·기도 제목·설교 내용 정리)은 설교에서 실제로 말씀하신 내용만 담았고, 7장 '참고자료'는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 목사님이 부목사로 계셨던 교회 이름은 자막에 '임 잉크'로 들려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노트에는 "한 교회"로 적었습니다.
-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저자는 설교에서 밝히지 않으셨습니다. "책 두 권을 소개했다"는 대목도 자막이 깨져 어디에(주보 등) 소개했는지, 다른 한 권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 1월 온라인 예배 접속 숫자(218→300, 195→280, 190→312, 222→320, 215→272)는 자막에 들린 대로 옮긴 것입니다. 자막에서 숫자가 일부 깨져 있어(예: "300원", "280억") 실제 표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울이 왕이 된 뒤 사무엘상 15장의 사건까지 걸린 햇수를 말씀하신 대목은 자막이 깨져 "몇 년 지나지 않아"로만 적었습니다. 성경은 이 햇수를 밝히지 않습니다.
- 첫째 명령 "수비대를 공격하라"는 사무엘상 10:5-7을 그렇게 읽는 해석에 따른 표현입니다(7-1 참조).
- 사모님이 "매주 인도하신" 모임, 예배 순서 중 "찬양하는" 순서, 어린이를 위한 순서의 이름, 마무리 기도의 "실패", "섭리" 등은 자막이 불분명해 문맥으로 옮겼습니다. 함께 기도하는 시간(영상 29~30분대)의 자막은 많이 끊겨 통하는 부분만 적었습니다.
- 사울의 통치 연대 등은 학자에 따라 견해가 조금씩 다릅니다.